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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및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체육

by hoontrader 2023. 9. 10.

6개의 부족사회로 나뉘어 있던 것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발던되면서 국가 간의 투쟁이 더욱 심해졌다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게 되었고 군대를 훈련시키는 제도가 확립되었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평소에는 농사를 짓던 농부들도 전쟁이 나면 모두 군인이 되는 국민 개병제를 선책 하였고 신라는 평소부터 젊은 장정을 뽑아서 훈련 시긴 다음 군인이 되게 하는 징병제를 선택하였습니다. 백제는 신라와 전쟁이 잦았고 중국보다는 일본과 교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삼국통일 시 모든 기록이 소실되고 중국에도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으나 신라에서는 화랑 고구려에서는 경당을 중심으로 군대훈련을 하였습니다. 삼국 모두 귀족의 자녀를 중심으로 무사교육을 했기 때문에 무예 이외의 유희와 오락의 발전도 가져왔다. 수렵, 검무, 택견, 각저, 축국, 투호, 쌍육, 죽마 등을 즐겼고 부녀자들의 군무도 등장하였습니다. 화랑도 정신은 우리나라의 고유사상인 늠름한 기상과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유교, 불교, 선교의 사상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심신단련과 무예의 연마, 단체생활을 통한 협동 정신의 함양, 인격도야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였습니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의 양성이 목적이었습니다. 화랑도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 세속 5계와 삼덕이다. 이것들은 화랑의 교육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위한 도덕적인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경당은 구구려의 경당에서는 무예와 함께 경서를 가르쳤다. 유교적인 도덕관과 무예를 갖춘 인재를 길러 조화적인 인간상을 심어주려고 한 것이다. 경당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선인이라 하였다. 당시의 무사들은 무예와 함께 담력을 길러서 국가나 개이니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강인한 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건국 당시에는 무관들이 세력을 잡았지만 나라가 안정되면서 문치주의를 표방하였습니다. 자연히 관직제도가 문관 위주로 짜이자 무관이었던 기존의 지배계층들이 유교적인 교양을 쌓아 문과를 통하여 입신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회적 변화의 영향으로 문관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무예실력을 갖추었고 유의, 오락적인 것에도 경기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다. 수박은 개인 호신술로 각광을 받았고 궁술은 문관과 무관 모두에게 필수적인 종목이 되었다. 마상재, 격구, 기사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크게 성행하여 수만 명의 관중이 모이는 인기 스포츠였습니다. 고려시대의 체육은 신라시대의 무사를 기르기 위한 무예체육에 유희적인 요소와 경기족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귀족들은 격구를 즐겼고 서민들은 활쏘기로 내기를 하거나 축국을 즐겼다. 연날리기와 위기가 등장하였고 방응은 신라시대에도 있었지만 고려시대에는 오락적인 면이 강했다,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관람적인 유희로 무용, 연극, 가면극 등이 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