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유교적인 관료주의 국가이었기 때문에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였고 토지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여가시간이 거의 없이 매일일만 하는 생산도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고려시대에 있었던 스포츠적인 요소는 거의 사라지고 명절과 농한기에만 일반 백성들이 약간의 유희를 하는 정도였고 무관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나 국방을 위해서 과거제도에 무과가 있어서 무예의 명약은 유지되었다. 화약의 발달로 총포, 총통 등이 발명된 이후에는 활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검술과 창술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놀이나 오락도 신분에 따라 즐기는 종류가 달랐을 뿐 아니라 어떤 것은 서민들은 하지 못하게 했다. 서민들은 씨름 그네뛰기, 농악, 줄다리기, 썰매, 자치기, 널뛰기, 공기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 윷놀이 등을 즐겼고 양반들은 쌍육, 바둑과 장기, 격구, 투호 등을 즐겼다. 그중에서 널뛰기, 썰매 타기, 자치기, 공기, 줄다리기는 고려시대에는 없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새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조선시대의 무인들은 충, 효, 의를 무인정신의 근간으로 삼았고, 삼강오륜은 문무, 반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들의 도덕적 기준이었다. 지방 선비나 호족의 자제들로 구성된 한량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산천을 돌아다니며 무예를 닦고 호연지기를 길렀다. 그러한 한량들이 신라의 화랑과 고려의 설랑의 무사정신을 계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의학이 발달하여 무당이 병을 고친다는 생각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고 후기에는 서양의학도 도입되었다. 서양의학의 도입과 더불어 과학적인 보건위생 사상도 백성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체육은 해방이후 우리나라의 체육은 민주주의 체육으로 전환되었다. 체육시간에는 체조, 스포츠, 유희 등을 가르쳤고 보건시간에는 보건, 직업, 취미, 오락 등을 가르쳐서 일반국민들이 건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엘리트 스포츠를 장려해서 체육을 통해서 국위를 선양하려고 하였고 학교에는 교련시간을 두어서 국방력 증강을 뙤하려고 하였다.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다음부터는 국민의 건강체력을 향상할 목적으로 생활체육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이후에는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체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등산과 낚시와 같은 야외활동이 성행하게 되었고 친환경적인 스포츠와 암벽 타기, 번지점프, 극지탐험과 같은 극기 스포츠가 등장하게 되었다